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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새 무서워져요. 모든 것의 안만 보여요. 풀잎 뜬 강(江)에는 살 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강물 위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에선 문득 암호만 비쳐요. 읽어봐야 소용없어요. 혀 잘린 꽃들이 모두 고개 들고, 불행(不幸)한 살들이 겁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 뿐이예요. 곳곳에 쳐 있는 세(細)그물을 보세요. 황홀하게 무서워요. 미치는 것도 미치지 않고 잔 구름처럼 떠 있는 것도 두렵잖아요. ─황동규, 초가(楚歌) 이하는 호래스 마이너의 논문 『카리메아 부족의 신체의례 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의 일부를 인용하여 소개한 레나토 로살도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연구자 집단의 언어적 의미 체계에 의해 재구축된 연구대상의 실재와 자기 행위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가 가능한 연구 대상자의 자기 인식 간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는 인문사회과학 영역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 의식의 하나다. 경제학이나 경영학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어느 영역은 이를 배제하는 실천 양식이 지배적이고, 어느 영역은 이에 대한 성찰이 더 깊을 뿐이다. 아무래도 연구자와 대상 간의 구별이 명시적인 인류학 영역에서 두드러진 예를 찾을 수 있다. * * *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데 민족지적 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는 인류학자들, 특히 호래스 마이너 Horace Miner의 고전적인 논문인 『카리메아 부족의 신체의례 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물론, Nacirema의 철자를 반대로 하면 American이다)를 읽어본 인류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점이다. 그 논문 내용 중 고전적인 규범에 따라 씌어진 카리메아의 <구강의례 mouth-rites>에 대한 민족지적 묘사는 미국인들 자신에게는 매우 풍자적인 것이었다. 이 부족의 모든 사람이 행하는 매일매일의 신체의례 중엔 구강의례도 있다. 이들이 입 안을 관리하는 것에 관한 한 엄청나게 꼼꼼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구강의례는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매우 혐오스러워 보인다. 내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그 의식은 어떤 마법 분말을 바른 조그만 돼지털 묶음을 입에 집어넣은 다음 그것을 형식화된 일련의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에세이는 화자를 현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위치짓고, 아울러 일상적인 행위를 어떤 의례적인 행위, 혹은 주술적인 행위로 만들어버리는 거리를 두는 용어를 사용하여 미국인들의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분명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와 민족지에 쓰이는 기술적인 숙어 technical term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마이너의 민족지는 대부분 <우리> 미국인들이 <우리> 이빨을 닦는 행위를 이야기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라 특정한 전문가 집단이 쓰는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 그의 글이 풍자로 읽히는 까닭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이닦는 행위와, 민족지학자의 고상하고, 거리를 둔, 일반화된 기술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 부정합은 마이너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적인 전문용어와, 그가 말하는 구강의례란 다름 아닌 아침마다 하는 양치질임을 아는 북아메리카 독자들의 지식 사이에 존재한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왜 마이너의 글이 민족지적 기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악의 없는 조크로 받아들여졌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누가, 자기 자신에게 적용될 경우 어이없이 들리는 방식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묘사하면서도 예전처럼 여전히 마음 편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초연한 관찰자가 누리는 권위적인 객관성이라는 것이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적절한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말하기 방식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레나토 로살도 저, 권숙인 역, 『문화와 진리: 사회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아카넷, 2000, 102-103쪽. 근대 ‘문명’사회─산업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생산적이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때문에 몽상할 자유를 잃었다. 일하지 않고, 생산하지 않고 여유작작 몽상에 빠지는 것은 게으르고 쓸모 없는 사람의 표상이다. 몽상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스스로를 옭죄어들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한다. 일을 해야 한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공익에 이바지하는 일원이 되어야 한다.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언가 만들어내야 한다.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질과 양의 측면에서 증가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언명은 근대 계몽주의 이후 합리성이 획득한 위상 만큼이나 강렬하게 짓누른다.
이 시대에 몽상을 꿈꾸는─이 무슨 역설적인 표현인지─이들은 나름의 생산성을 인정받기 위한 매개를 선택해야만 한다. 몽상이 생산으로 이어진다는 자기 인증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곡을 쓴다. 이론을 엮는다. 나무를 깎고 흙을 빚는다. 만화를 그린다. 영화를 찍고 극을 쓰며 안무를 짜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올린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생산물을 내 놓는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정당하게 몽상하기 위하여.
![]() 조금 늦었다. 오전에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대학생나눔문화 회원 두 명이 경찰에 불법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문자로 전해 듣고는 원래 있던 일정도 취소하고 간 집회였는데, 조금 늦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경찰에 의해 연행된 후였다. 한 차례 진압이 이루어졌는데 집회의 흔적이 어지럽게 바닥에 흐드러져 있었다. 넘어져 다친 사람을 겹겹이 둘러 싼 경찰들이 쉴 새 없이 채증을 하고 있었다. 쓰러져 있던 사람은 이윽고 일으켜져 경찰에 끌려갔다. 먼저 와 있던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곱 시 반 경 명동 입구에서 시작한 아프간 파병반대 촛불문화제는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명동 예술극장 앞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래 두어 곡 부르자니 이내 경찰이 진압을 시작해 해산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다.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낼 기회조차 없었다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가 절실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젠 민주화가 당연한 사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이상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느끼며 살아왔었다. 당연함의 기반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경찰 진압에 의해 흩어졌던 했던 사람들은 명동 성당 앞에 모여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경찰들이 곧 몰려왔지만 명동 성당 앞에서의 충돌은 없었다. 바로 전에는 순식간에 진압을 시도한 경찰이 여기에서는 왜 침묵하고 있었을까. 용산 참사와 관련하여 명동 성당과 경찰 간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어젯 밤에만 열 여덟 명이나 연행되었다 한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맞이하야 자그마한 잡음이라도 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당국의 굳은 의지가 옅보인다.
![]() 학문의 가치가 예측력(과 이에 기인한 도구적 유용성)이라는 단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학문 영역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관점이지만, 지금-여기에 만연한 관점이기도 하다. 그것이 왜 주요한 가치 준거로 작동하며 실제로 그러한 평가 기준이 여러 영역─학문 영역보다는 시장이나 국가와 같은 학문 외 영역─에서 지배적인 준거로서 사용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고려 없이 실용성을 절대적인 가치 준거로 제시하며 옳고 그름을 재단한다면 종교적인 믿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식의 관점이 더 확장될 때, 대학은 기업이니 순수학문은 없애고 응용학문만 남기자는 식의 주장도 가능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 더 이상 취득할 정보를 고르는 일 조차 개인의 능력 밖이다. 가능한 것은 단지 채널을 선택하는 일 정도. 어떤 채널을 선택해 정보를 얻어 세상을 조망하는가가 곧 그 사람의 관점을 대변한다. 물론, 능동적으로 채널을 선택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다. 정보에 대한 비교 선택은 고사하고, 채널에 대한 비교 선택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인지 범위에 의해 사회 실재가 결정된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는 이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 한 발 물러나자면, 최.소.한 자신이 세계를 조망하는 채널이 지닌 방향성과 속성 가치관과 관점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는 이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 소박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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