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더듬이 비망록
카테고리
전체
그냥 몇마디 경계에 서서 느껴 생각케 하는 눈의 기억 BLOG/WEB & ME 영화, 공연, 전시 책 / 텍스트 시, 눈뜨다 행동강령 자전거 L I N K be 비공개 기록 나하 체류기 인도 티베트 팔레스타인 일본 종주 工/功夫 - 맛 태그
DemandDignity
강연
국제앰네스티
믿음
자유
아스팔트는참딱딱하겠지
출산률은
홍세화
국민국가
아이린칸
방한
2009
영토
수학능력시험
강허달림
이나라의
더더더
권리
빈곤
이주
2010
수능
브레인스토밍
바보
사무총장
인권
TheLightsintheSkyAreStars
분배
떨어질필요가있다
보장
최근 등록된 덧글
그지? 그렇지? 그 긍정적인..
by 엘체이 at 02:17 부정적인 발언은 싸움으로.. by 까막 at 12/10 인간인 이상 스스로 인간 .. by 아르 at 11/30 그렇다고 죽을순 없잖슴 by 로무 at 11/30 예전에 모 서울 시장이, .. by rururara at 11/30 머릿수가 파워다~! 라는 .. by rururara at 11/30 이 글의 요지는 태그에 있.. by 젊은노인 at 11/29 에이 바보들. 콘돔을 못팔.. by 지수 at 11/27 쓸데없는 사업에 투자하.. by blue ribbon at 11/27 앰네스티의 이념이란 이념.. by 고은태 at 11/26 ㅜㅜ. by 달팽이 at 11/26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by kuna at 11/24 저는 탁월한 사람, ^^;;;; by 사마리아 at 11/23 오오, 그렇습니다.. by 사마리아 at 11/23 당연함은 시공간적 맥락에.. by 아르 at 11/23 갸-정당해지기 위한 선택.. by kuna at 11/20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by highenough at 11/17 "별과 별 사이에 어둠이 너.. by rururara at 11/16 나선의 벗들이 기다리는 별.. by laystall at 11/16 나두 별 히히 by 21c백설공주 at 11/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서울비의 알림
by seoulrain's me2DAY yuna의 by yuna's me2DAY 한국의 인권피해자들과 .. by Amnesty HumanLog (.. 어떤 하찮은 이유라도 전쟁.. by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 MB "北 인권에관심 기울여야" by 枳棘非鸞鳳所捿 앙드레 고르, \'자유 시간.. by 블로그 지음 [트랙백] 앙드레 고로, .. by 초마이너 지향 메모장
e-mail me :
![]() # 조용한 방 # 누구의 것도 아닌 링크 # 국가인권위원회 # 인권운동사랑방 # 사람연대 # UNESCO 세계기념일 # Reader's Guide # 국내뉴스통합검색 KINDS # 국립국어원 - 표준국어대사전 # 한글학회 # 위키백과 한글 # wikipedia English # 마이너블루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 발.바.리 # 자.출.사 # 블로그코리아 # 올블로그 # Ma-Anne Dionisio # 코멘트 아이디 추출기 # 내가 남긴 댓글 # 공식 이글루 # MI-RING # 시선
Copyrightⓒ2004~ By aR.
Almost all rights reserved.
이전블로그
2009년 12월
2009년 11월 2009년 10월 2009년 09월 2009년 08월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7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2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2005년 06월 2005년 05월 2005년 04월 2005년 03월 2005년 02월 2005년 01월 2004년 12월 2004년 11월 2004년 10월 2004년 09월 2004년 08월 2004년 07월 2004년 06월 2004년 05월 1999년 01월 이글루 파인더
|
수업 후 주차장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주로 수업 중에 나왔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데, 한 번은 인구 문제와 환경 문제가 화두로 올랐다. 나는 풍요에 겨워 환경과 자원 문제에 도통 관심이 없는 미국을 그다지 좋아할 수 없으며, 미국인들이 의식을 바꾸고 작은 것을 함께 실천하면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데 그런 움직임이 별로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도 동의했다. 그러며 예를 들기를, 미국인 하나하나가 의식적으로 재활용 종이를 사용하면 매년 엄청난 면적의 삼림을 보호할 수 있다 하였다. 미국은 정말 그러하다. 국민 개개인의 사소한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보단 낫지만, ‘호러블'하다. 그나마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가장 높은 주 중 하나다. 그 사실이 더욱 ‘호러블'하다. 이곳도 어쩔 수 없는 일회용품의 천국이다. 분리수거를 하긴 한다는데 도통 강제력도 없고 의식도 그다지 없고 사실상 그것을 함께 실행하도록 유도하는 제대로 된 체계도 부족해 보인다. 쓰레기는 종류에 상관없이 커다란 검은 비닐 봉투에 모조리 던져 넣고 묶으면 끝이다. 캘리포니아에 와서 가장 끔찍했던 건 바로 이 쓰레기 대량 생산의 일상이었다. 산업과 시장의 대량생산 체제는 필연적으로 대량소비를 요한다. 대량소비는 대량폐기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대량폐기는 단순히 생산량이 증가한 만큼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대량생산에 의한 새 제품의 홍수는 한 번 사용한 것을 버리는 일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조금 더럽고, 조금 헐었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새 것을, 다른 것을,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바로 이게 행복이라 말한다. ‘샤핑 shopping’의 행복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소비가 사람들의 유일한 행복이 되는 한 여타의 가치들에 대한 시장의 폭거는 끊이지 않는다. 헨리 제글럼 감독의 영화《Going Shopping(2005)》에는 이러한 ‘샤핑’에 중독된 사람들이 나온다. 옷을 사는 일에서 행복을 추구하다 못해 그것에 대한 집착에 얽매여 옷도둑질까지 하는 어머니나, 자기 월급을 이미 일하는 가게의 상품을 사는 데 모두 탕진해버려 일을 하고도 받을 돈이 없는 직원이나, 수줍게 ‘샤핑’ 중독임을 고백하는 남자 주인공이나, 모두 소비에서 행복을 찾는 데 너무 익숙해진 이 사회의 온상이다. 영화 속의 한 여성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샤핑’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스포츠다.” 그만큼 열의와 집중도를 요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스포츠’에 열중할수록, 그 외의 것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이 ‘스포츠’는 인기가 있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기업은 이 스포츠의 인기를 뜨겁게 달구는 데 혈안이다. 기업의 입장에선 과열이란 없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은 소비에 대해서도 적확히 들어맞는다. 소비의 열기가 과할 때 개인이, 사회가, 세계가 추구할 법한 다른 가치들은 모두 증발해버린다. 현대의 산업과 시장의 구조는 지극히 다분화 되어있다.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비를 지탱하기 위한 생산과 유통과정 마저도 잘게 쪼개져 있다. 효율을 위한 이 업무 다분화는 사회 파편화를 넘어 인식의 파편화까지 이어진 것 같다.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이 생산-유통-소비의 일련의 흐름 속에 위치한다는 사실, 자신의 업무가 최초의 의지에서 최후의 결과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기가 관련하는 '조각'만 인식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도 그런 맥락이다. 조각만을 인식하는 개인은 의도하지 않게 ‘악’에 기여하곤 한다. 그 ‘개인’은 유별난 악한이 아니라, 다분화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소비에만 집중하는 소비자도 예외는 아니다. 소비와 생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인데, 소비자는 생산을 의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비라는 행위가 일어나는 빈도만큼 생산에 대한 의식도 함께 생겨난다면 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환경 파괴, 지역 사회의 유지, 타당한 노동, 동물 실험, 건전한 유통, 깨끗한 먹거리, 독성 없는 제품, 유전자 조작 등 수많은 사안들도 생산-유통에 이어지는 소비 행위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생산과 유통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이미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대안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지역 농민들의 작물을 취급하는 마켓 체인은 지역사회의 공생을, 공정무역커피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의 노동 착취, 중개상의 과도한 이익 차출에 대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의식 있는 소비가 대안을 만든 경우다. 재활용 상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경제가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고 말한다. 그만큼 자본주의 시장의 힘이 막강하고 광범위하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이 시장을 구성하는 생산자 기업과 소비자 개인의 힘은 지독할 정도로 기업 쪽으로 치우쳐 있다. (자본과 결집의 힘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힘의 주도권은 소비자가 쥐고 있다. 개인들의 소비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렇기에 각종 기업들이 기를 쓰고 심리학을 활용한 광고 전략으로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심지어 없는 소비욕구를 새로이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역으로 아직도 소비자들이 소비를 조정함으로써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체제 자체를 단번에 뒤엎는 혁명적 변화도 있지만, 내부의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전체를 색을 천천히 바꿔 놓는 변화도 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도 성공만 한다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택적이고 비판적인 소비는 시장이 가진 지대한 힘을 움직여 새로운 흐름을 이끌 수 있다. 어떤 소비를 하느냐가 어떤 생산-유통을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동 노동착취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선 아무리 값싼 노동력이라도 사용할 의미를 잃는다. 쉽게 버리고 금방 새 것을 사서 쓰는 일회용품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구 환경을 생각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소비자가 선호한다면, 기업은 그 기호에 맞출 수밖에 없다. 대다수가 공정무역 커피만을 선호한다면 스타벅스도 결국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국경을 초월하는 시대에 기업이 방향을 바꾸면, 그 여파는 전지구적으로 퍼져나간다. 그만큼 작지 않은 변화를 잠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비자 개인들이다. 각각의 개인이 생산-유통-소비가 일련의 과정으로서 언제나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고, 그에 바탕을 둔 의식 있는 소비를 한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개인의 작은 실천이라는 그 시작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퍼져 나간다면 끝은 분명 창대할 것이다. ‘소비자 혁명’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