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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항상 메모를 한다.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하기 위해서다. 글이라는 형태로 재정리하지 못한 여행은 실상 내겐 미완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나의 여행은 중간 중간 공백이 많다. 여행 도중에도 시간을 비우고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하며 노트에 거칠게 적어 놓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여행이라는 소중한 시간과,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내기 위해 들인 비용을 낭비하는 짓이라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여백이 없는 숨가쁜 여행이야말로 오히려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경험과 사유를 자신의 것으로 미처 흡수하기도 전에 다음 것에 탐욕스럽게 다가가는 폭식 행위는 나의 여정을 척박하게만 할 뿐이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오키나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메모를 하고 있었다. 식사대를 내리고, 만년필로 몰스킨 노트에 생각을 흩뿌렸다.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글들에, 가끔 나조차 맥락을 잃으면 이해할 수 없는 흘림글자 투성이인 메모들. 내가 자리에 앉아 자세를 잡고 글씨를 적을 수 있을 때 기록하는 방식이다. 어디에 가든 항시 꺼낼 수 있도록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작은 몰스킨 수첩과 필기구,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다. 모두 기록의 도구다. 여행 중 수첩은 지출 내역을 기록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한다. 어디서 무엇을 위해 얼마를 사용했는가 하는 기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한다. 물론, 규모있는 지출을 위해서도 자신의 지출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렇게 정리한 지출 내역은 그 날 밤 숙소에서 몰스킨 노트에 다시 제대로 정리를 한다. 그래야 날짜별로 얼마를 사용했는가, 이번 여행을 위해 현재까지 쓴 비용이 얼마나 되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수첩 속에는 이동 중의 감상이 간간이 적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 혹은 식사를 하는 도중에 떠오른 느낌이나 생각들을 조잡하게 적어 내려간 흔적들은 그 날 지출한 비용 내역의 사이사이에 위치하며, 나중에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를 기억할 수 있게 돕는다. 작은 디지털 카메라는 매우 훌륭한 기록의 도구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아 몇 번이든 부담없이 찍고 나중에 필요없으면 손쉽게 지워버릴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수첩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난삽한 내용은 수첩에 담는다. 그리고 하루의 여정과 눈의 기억은 카메라가 기록한다. 기록용 사진은 굳이 고화질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작고 가벼워 언제라도 꺼내 사진을 찍고 다시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요즘 나오는 얇고 작은 카메라들은 선명한 화질에 흔들림 방지 기능까지 있어 기록용 카메라로 아무런 모자람이 없다. 날짜별로 사진을 정리해 주는 기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기록용 사진 찍기의 미덕은 어디에 가든 일단 찍고 본다는 데 있다. 필요하다면 연사 기능을 이용하여 무조건 찍고 찍고 또 찍고 본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찍은 사진을 다시 훑어보며 필요 없는 사진을 지우다보면 자신의 여정에 대한 복기가 절로 된다. 이 사진들은 이후 기행문을 쓸 때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된다. 기행문에는 사진 한 장 덧붙여 넣지 않아도 좋다. 실제로 나는 여행 후 기록에 내가 찍은 사진의 십분의 일도 사용하지 않는다. 기록과 기억만을 위한 사진, 사적인 사진, 흔들리고 망가진 사진 등을 빼고 나면 기실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재구성의 뼈대로 사용할 요량으로 찍은 사진들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무겁고 좋은 사진기를 들고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런 사진들이라면 글 한 자 덧붙이지 않고도 자랑스러운 여행의 기록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아직 그런 목적으로 사진을 찍진 않는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는 경우 온라인 상으로 접속 가능한 나의 공간을 이용해서도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필요하겠다 싶은 이미지를 캡쳐해 올린다거나, 필요한 링크를 기록해 두기도 한다. 펜보다 빠른 타자를 이용해 의식의 흐름을 좇아 무작정 써 보기도 한다.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저장해 두기도 한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은 이글루스 블로그, 플레이톡, 그리고 스프링노트다. 세 곳 모두 나름의 특성을 고려해 용도별로 사용 중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몰스킨 노트, 몰스킨 수첩,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세 곳의 온라인 공간에 여행 기록을 분산해 남기고 있다. 게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곳의 백엔샵에서 산 원고지에도 만년필로 꾹꾹 눌러 몇 꼭지의 글을 적어 두었다. 거기에 오키나와에 대한 몇 가지 자료도 모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난삽하게 나눠 모아둔 기록을 한 곳에 모아 종합할 수 있는 나만의 컴퓨터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곳 숙소에는 공공 컴퓨터가 있긴 하지만, 워낙 개방된 공간에 있는 데다 두 대 밖에 없어 오랜 시간 집중해 글을 쓰기엔 부적합한 환경이다. 이럴 때마다 항상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노트북이 정말 아쉽다. 여행의 과정을 기행문으로 재정리기 위해선 그 당시의 상황으로 시간여행을 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 둔 기록과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공간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어디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이 없이는, 여행지에서 기행문을 작성하는 일은 어려울 듯하다. 노트와 펜이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특히 사진 자료들을 기행문에 포함할 형태로 가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합적인 재구성은 아무래도 어렵다. 결국 여행 중 여백을 만들어 놓고도 이곳저곳에 흩어 놓은 기록들을 한 곳에 모으지 못한 채, 어떤 방식으로 모으면 좋을까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앉아 있다. 실로 안타깝다. 다음 여행부터는 어떻게 해서든 작은 노트북을 하나 구해야겠다. 무선 인터넷 없어도 좋으니, 가볍고 믿음직한 놈으로 하나. 결론: 작은 노트북이 필요해. 어디 협찬 같은거 안 들어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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