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연권 vs 끽연권: 혐연권은 문자 그대로라면 ‘담배를 싫어할 권리’지만 실상은 ‘건강을 유지할 권리’나 ‘자유롭게 호흡할 권리’에 더 가깝다. 담배 연기때문에 호흡 곤란을 느끼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흡연가는 반성해 마땅하다. 숨 못 쉬는 고통에 어찌 자신들의 취향을 들이대며 비교하는가. 호흡에 대해선 소수자인 나로서는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안.
먹고 싶은 데 먹을 수 없다. 입맛은 부활했으나 소화기관은 총체적 파업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벌써 삼 일 째다. 하루 한 끼도 겨우 먹고, 먹으면 하루 종일 괴롭다. 하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욕구와 현상의 불일치였다. 그 사실에 통탄할 따름이다. 욕구에서 자유로울 경지는 아직도 멀고 멀었다.
인터넷의 정보적 기능에 집중하는 서구 사회에 비하여 동양권은 관계적 기능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 차이는 상호적 기능 흡수로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편이다. 이는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만큼이나 여전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