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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이나 쓸 수 있을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쓸 수 있었다. 거리낌이 없었다. 거리낄 이유조차 없었다. 나를 관통하는 내적 충동만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충분했다. 미약하나마 자신감이 있었고, 자만에 빠지는 일도 부끄럽지 않았다. 쓴다는 것은 실로 자유로운 행위였고, 독보적인 실천이었으며, 몰입할 수 있는 지극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하지만 한 순간을 지남으로써,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지식의 열매를 한 입 베어 문 아담과 하와처럼,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을 맞이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스스로의 불완전함이 나의 길을 막아 섰다. 정체의 기간이 수 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 동안 보고 듣고 읽고 겪고 배우고 생각을 하며 지냈다. 여전히 쓰기 힘들다. 명료함과 단순함, 그리고 이와 함께하는 확실성을 갖지 못했다. 가끔씩 회귀를 생각한다. 지난 글들을 되짚어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순진한 열성과 거침없는 발자취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길은 앞으로 나아 있으며, 앞으로 뻗은 길이야 말로 죽 곧은 길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이는 부끄러움이 없는 시기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닦아 나가야 할 뿐이다. 여전히 정체하고 있다. 겨우 수 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젊어서, 그 불확실성의 바탕 위에서, 초조했던 시기도 이젠 조금씩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초조함이 사그라든 만큼, 딱 그 만큼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좋겠다. 겨우 수 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주저 앉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씩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명료하게, 간결하게, 확고하게, 그리하여 단아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쓸 수 있는 시기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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